[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 '4·13 총선'의 공천 파동이 막을 내렸다. 이제는 여야가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하지만 이번 '공천파동'을 지켜본 대다수 유권자들은 패권정치에 신물이 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정치권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유혈이 낭자한 공천과정을 보면서 비교적 충성도가 높은 여야 지지자들조차 "투표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외면하는 상황이다. 제18대 총선 때처럼 투표율이 급격하게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혐오' 내지는 '정치기피' 현상은 여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투표율이 낮을수록,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투표율이 높을수록 더 많은 원내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치혐오 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야당 지지층인 2030세대일 것이란 분석이 이 같은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너, 투표 할 거니? 찍을 사람은 있어?"…2030세대 확산되는 '정치혐오' 현상
요식업계 종사자 이모(32)씨는 28일 "(찍을) 사람이 없다"며 "이번 선거일에는 근교에 놀러나 갔다와야겠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일하는 박모(32)씨도 "여건이 되면 해야겠지만 업무 일정이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며 "사실 내가 사는 지역에 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도 네티즌들은 '이번 선거 찍어 줄 당이 없다', '여당도 여당이지만 야당도 뭘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이제 호구들이 계획대로 표를 주면 또 4년 누리면서 사는 거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뭘 하든 알게 뭐냐' 등 투표에 강한 회의를 드러냈다.
최근 결혼한 서모(27·여)씨는 "인물이 마음에 안들어도 새누리당이면 무조건 찍어주다보니 지난번 같은 공천파동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투표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전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모(36)씨도 "투표날은 그저 '쉬는 날'에 불과하다"며 "정치가 사람들을 너무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서 쳐다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2030세대 투표율 낮으면 새누리 '유리'…더민주당 등 '불리'
역대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20~3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의 의석수가 늘었다.
실제로 지난 18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46.3%였지만 20대는 28.1%, 30대는 35.5%에 불과했다. 당시 한나라당 153석, 민주당 81석, 민주노동당 5석, 자유선진당 18석, 창조한국당 3석, 친박연대 14석, 무소속 25석 등을 확보했다.
그 다음 19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54.4%였다. 20대는 41.5%, 30대는 45.5%까지 기록해 18대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 결과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등을 기록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18대와 19대 총선을 비교하면 다른 연령대는 많게는 5%포인트에서 적게는 2~3%포인트 밖에 투표율이 차이나지 않지만 2030세대는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결국 2030세대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이번에도 야당이 어느정도 선전하려면 서울지역 투표율이 최소한 50% 이상은 돼야 2030세대에서 19대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만약 50% 밑으로 가면 야권은 사실상 괴멸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야권 지지자들은 투표가 '권리'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권 지지자들은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경우 말은 투표 안하겠다고 해도 정치혐오나 정치기피 현상과는 거리가 있는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오히려 보수진영에서 정치혐오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며 "보수진영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투표 안하겠다고 한다는 얘기를 확대재생산 하는 것도 결국엔 젊은층의 투표 이탈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2030세대+4050세대 표이탈 최소화가 관건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2030세대 투표율을 높여야 야권에 유리하다는 것도 일리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전체 인구비율 중 2030세대는 36% 수준이다. (이들의) 투표율이 높게 나와도 전체 투표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이어 "3김시대에는 2030세대의 투표가 전체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전체 인구 비율 중 2030세대가 56% 상당이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2030세대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4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다. 결국 이들의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공천파동이야 항상 있어왔고 야권 분열에 따른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투표에) 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권자들은 내가 투표해봤자 지지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투표를 아예 안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명박과 정동영이 붙었던 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보다 18대 대선 투표율이 높았던 것처럼 '사표'의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번 공천파동 때문에 수도권 지역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많이 빠졌던 것을 감안하면 단일화 등으로 여야 일대일 구도가 형성돼 박빙 승부를 치를 경우 사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더민주 등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치명상을 입지 않으려면 2030세대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로서 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는 민주화운동 세대(40~50대)의 지지를 끌어내고, 사표를 방지해야만 최소한 경기 서부와 서울 남부 등 정통 야당 벨트라도 수성할 것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