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이불속이나 채무관계까지 추적할 만큼 경찰은 한가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기 바쁜 당사자들은 수사 능력이 없다. 바로 이 단순명쾌한 논리 때문에 민간조사제도 합법화 논란이 뜨겁다.
납치와 살인 등의 강력 범죄가 늘어나는데 비해 경찰력은 심각한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사소한 범죄는 더욱 민간 수사력을 필요로 한다. 특성상 물증을 잡기가 어려워 대부분 무혐의나 무죄 판결로 이어지는 간통고소가 대표적 사례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설탐정들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생모 살해 영아 납치 사건 계기
민간조사업에 대한 법제화 추진은 1999년부터 이뤄졌다. 법 제정 추진의 본격화는 2005년 심부름센터 직원이 생모를 살해하고 영아를 납치한 엽기적인 사건이 배경이 됐다. 임신을 핑계로 연하의 재력남과 결혼한 30대 유부녀 김씨가 남편과 시댁을 속이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찾은 것. 7000만원을 걸고 영아 유괴를 의뢰했고 심부름센터 직원 3명은 생후 70일 된 아기와 엄마를 납치한 뒤 아기를 의뢰인에게 팔아넘기고 엄마는 살해 암매장했다.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고 심부름센터의 불법 영업을 막기 위한 법제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심부름센터의 오랜 불법적 영업 형태는 오히려 법제화에 방해가 됐다. ‘음지의 해결사’ 이미지가 강해 탐정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에 반감이 거셌던 것이다.
합법화가 불법을 막을 것인지, 오히려 불법을 확산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합법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음지에서의 불법적 행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부름센터는 세무서에 신고만하면 누구나 문을 열 수 있어 난립이 심각하다.
1990년대 전국 1500여개 정도이던 심부름센터가 현재는 전국 3000여개가 넘는다. 경쟁은 치열하고 특별한 자격요건은 없다보니 돈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불법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간통 증거 몰카 음란사이트 팔아넘겨
대부분의 심부름센터가 배우자의 불륜 현장 포착을 주 업무로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불법이 도청이나 몰래카메라에 의한 사생활 침해다.
간통죄로 고소당하고 아내와 이혼한 이씨(35)는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서 자신의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동영상은 불륜 상대자와 모텔에서의 성행위를 담은 것이었다. 이씨의 아내가 심부름센터에 이씨의 불륜현장을 의뢰했고 심부름센터 직원이 추적과정에서 찍은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팔아넘긴 것. 이씨는 “설사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이미 유포된 동영상은 막을 수 없다”며, “간통죄에 대한 벌은 이미 받았다. 이처럼 모욕적인 사생활 침해마저 겪어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한 심부름센터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간통 증거는 1주일에서 15일이면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부름센터 직원은 미행과 사진 포착은 물론, 현장을 추적해 결정적 증거를 잡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단언했다. 간통고소를 위한 의뢰는 심부름센터 직원이 현장을 찾아 의뢰자에게 전화를 하면 의뢰자가 경찰과 동행해 현장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형태다. 비용은 150만원 정도였는데, 도청이나 몰래카메라 등 수위가 조금 높은 불법적 증거를 요구할 경우 200만원 정도로 비용은 더욱 높아졌다. 기업 내 산업스파이나 채권회수 등의 사업적 목적의 도청은 더욱 가격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한 심부름센터 직원은 “도청이나 몰카, 위치 추적기 등의 장비가 발달해 최근에는 추적이 어렵지 않다”며, “볼펜이나 인형, 시계 등 소품에 장착된 녹음기나 카메라를 쓰는데다 변장이나 릴레이 미행 등 각종 기술이 다 동원되기 때문에 실패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스토커의 도우미가 되기도
사정이 이렇다보니 불법 장비로부터 감시를 받는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다. 직장인 김씨(35 여)는 전 애인이 스토커로 돌변해 직장과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까지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전 애인은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김씨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쳤다. 김씨는 “어느 날은 차 안에서 위치추적기를 발견하고 소름이 끼쳤다”며, “전화 통화는 물론 내 집에 있어도 누군가 지켜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업 회의실이나 집무실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씨(48)는 “임원진 또는 거래처와의 비밀스러운 대화 내용이 계속 외부로 새어나가는 게 이상해 보안업체에 탐색을 의뢰한 결과 사장실 테이블 밑에 붙은 도청 장치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통신 보안시장의 몸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도 확산되는 보안 공포증을 반증한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안측정 및 도청 등 방지장비 설치를 주문건이 해마다 10~20%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 활동중인 보안 업체는 삼성계열의 에스원, 한국통신보안, 007월드 등 19개 업체에 달한다.
한국에 멋진 탐정이 없는 이유
이 같은 윤리적 일탈과 범죄만을 저지르는 암시장의 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PIA사설정보관리사는 탐정 이미지를 심부름센터와 구분해 셜록홈즈 같은 탐정을 국내에서도 활약하게 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PIA는 민간 자격제도로 취득자에 대한 수사 능력의 전문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료수집 및 정보를 탐색 조사하는 자격증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많다. PIA 자격증을 취득한 사설탐정들은 “공문서를 열람할 수 없어 수사가 비효율적이다”며, 경찰과 업무 협조를 아쉬워한다. 최종심의만을 남긴 채 아직 탐정제도가 합법화되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도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정확하게 명시가 필요하다. 민간특수행정학의 권위자인 경기대학교 손상철 교수는 “최소한 법인을 구성해 사생활 침해를 하거나, 범죄경력이 있는 사람이 이 분야에 진입할 수 없게 차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법제화는 물론, 민간조사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숱하게 보았던 드라마나 영화 속의 탐정들은 서구의 탐정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만큼 탐정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가 오래 전부터 완성돼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지의 선진국들은 모두 엄격한 탐정 자격증이 있고 자유롭게 개업할 수 있으며 위법을 철저히 막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세세하게 등급을 나눠 업무의 세분화 전문화까지 이뤄진 상태다.
불법 도청에서 청부살해까지 불법과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민간 조사 시장은 이제 시급한 ‘정리’가 필요하다. 법이 미치지 못하는 무정부 소굴에서 법의 손길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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