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탤런트 안재환의 죽음에 온 나라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잘 나가는 사업가로, 서울대 출신 연예인이라는 타이틀로 인정받으며, 개그맨 정선희와의 결혼으로 신혼재미에 푹 빠져있어야 할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자살을 둘러싸고 그 원인에 여러 설들이 제기됐지만, 사채빚 40억원 때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자살 원인을 사채빚 때문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실제로 최근 그가 벌인 사업들이 자금압박에 시달렸고 일정부분 사채를 썼다는 사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안재환의 자살로 한동안 잠잠했던 불법 사채의 폐해가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인 사채업자의 불법 채권 추심의 실태와 화려함 뒤에 숨통을 옥죄는 연예계와 사채업자의 은밀한 거래를 집중 취재했다.
연예인 전문 사채업체 활개
안재환의 갑작스런 죽음엔 사채빚 40억원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안재환의 아버지 안병관 씨는 9월11일 안재환의 유해를 추모공원에 안치시킨 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아들이 사채를 쓴 후 아들에게 ‘돈 가져오라’는 사채업자의 강압이 있었던 것 같고, 결국 재환이는 사채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다”며 아들의 죽음이 사채업자의 강압과 관련이 있음을 주장, 재수사를 촉구했다. 고 안재환이 자살이 아닌 사채업자의 타살 가능성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안재환 자살 사건 이후 사건의 파장은 대부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업계는 ‘안씨의 자살=고금리 사채=협박’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다. 그런데 한 사채업자로부터 연예인 사채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연예인을 전문으로 한 사채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 사채업 관계자는 “연예인이라도 일반적인 사채시장에서 신용으로 몇 억씩 빌릴 순 없다”며 “급전이 필요한 연예인은 연예인 전문 사채업체에서 돈을 빌리고 빚을 갚지 못해 협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명품을 걸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 것 같은 연예인들이지만 그건 일부 ‘잘 나가는’ 연예인들 얘기일 뿐이다. 한때 잘 나갔어도 대중적 인기가 끊기면 미래가 없는 것이 이들의 삶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어 유지비는 여전히 많이 들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일부 연예인들 중엔 사채빚에 속을 태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채와 관련된 소문은 간간히 뉴스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지난해 박철과 이혼공방을 벌였던 옥소리는 “술값으로 많은 돈을 탕진하던 박철이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며 “사채에 대한 원금을 갚지 못해 계속 빚에 허덕였다”고 폭로했다.
인자한 아버지상으로 인기를 끈 중견 탤런트 송재호는 사채 때문에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무려 50년간이나 빚을 갚으며 살아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었다. 영화제작사 실패로 사채빚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날마다 빚을 독촉하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렸고 자살까지 결심하게 됐다는 속얘기를 털어놨다.
화려함 뒤에 가려진 어둠의 그림자
코미디언 배영만도 사채를 썼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다. 도박에 손을 댄 배영만은 17년 전 건달로부터 1000만원을 빌렸는데 이자가 불어 순식간에 수천만원이 됐다고 그때의 쓰린 경험을 밝혔다. 배 씨는 “연예인은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보니 생계를 위해 일단 빌려 쓸 때가 많은데 날짜에 따라 이자가 늘어 위험한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연예인의 경우 소득과 담보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아 제도권 안에 있는 금융사에서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워 제2금융권이나 불법사채를 쓰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나 소득증빙이 필요하다. 담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연예인의 특성상 일정 소득이 계속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소득증빙이 어렵다. 은행 관계자는 “연예인은 자유직업(프리랜서) 개념이라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며 “이는 리스크를 예측할 수 없게 해 대출 상환 능력을 매우 낮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위 ‘잘 나가는 스타’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은 자칫 안좋은 스캔들이 나면 순식간에 평판이 무너지고 소득에 직격탄을 맞는 경우가 많아 연예인에 대한 대출 리스크가 큰 것으로 본다.
대중적 인기가 다해도 유지비가 많이 들고 생계를 위해 사업자금 명목으로 손을 벌렸다가 불법 사채업자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문제갑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정책위원은 “연예인이 돈을 빌린다고 소문이 나면 사업이 잘 안되기 십상”이라며 “개인 신용이 높지 않을 경우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검은 돈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고 실태를 말했다.
실제로 故 안씨의 ‘40억 사채빚’도 사채업 계산을 따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금액이다. 월복리 기준으로 3년 전에 안씨가 사채업체로부터 5억원을 빌렸다는 안씨 측근의 주장이 제기됐었다. 이를 바탕으로 안씨가 한 번도 이자를 안갚았다고 가정했을 때 연 50% 금리를 적용하면 21억7300만원, 40%를 적용하면 16억2700만원이다. 현재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은 연 49%지만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66%에 달해 은행 등 부채를 포함하면 40억원의 부채는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채빚의 규모와 어떤 목적으로 돈을 빌렸는지, 이를 둘러싸고 채권자의 협박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안재환은 이미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0551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11 (신천동) 한신빌딩 10층 | TEL : (02)412-3228~9 | FAX : (02) 412-1425
창간발행인 겸 편집인 회장 강신한 | 대표 박성태 | 개인정보책임자 이경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지원 l 등록번호 : 서울 아,00280 | 등록일 : 2006-11-3 | 발행일 : 2006-11-3
Copyright ⓒ 1989 - 2025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sisa-news.com for more information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