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최종 근무법원에서 판검사로 있으면서 진행 중이던 사건을 퇴직 후 변호사로 사건을 수임한다거나,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그렇지 않은 변호사보다 사건 수임을 많이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조계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는 전직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해 맡은 소송에 대해 검찰이 ‘전관’을 예우한다는 차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를 말하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왔다. 전관예우에 따른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전관’에 대한 특혜관행은 다소 수그러든 점이 없지 않지만, 이들이 사건을 싹쓸이 해 간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관예우’의 실태는 변호사 개업을 한 고위법관들이 퇴직 전 자신이 근무하던 법원의 사건을 퇴임 후 수임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하반기 형사사건 수임건수 상위 20위 안에 들었던 변호사 가운데 17명이 최종 근무법원에서 개업한 판·검사 출신으로 밝혀졌다.
형사사건 수임 건수 1위에 오른 조 모 변호사는 대전지검에서 퇴직한 뒤 이 지역에서 개업해 64건의 사건을 수임 받았다. 2위인 김 모 변호사와 3위 이 모 변호사도 인천지법에서 퇴직한 뒤 인천에서 개업해 각각 62건, 57건의 변호를 맡았다. 민사 사건의 경우도 수임건수 상위 20위 안에 든 변호사들 모두 최종 근무지역에서 개업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우 의원은 “판·검사로 일했던 사람이 퇴직 후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해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전형적인 전관예우 관행”이라며 “이로 인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물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이다”고 꼬집어 말했다.
참여연대가 2004~2007년까지 법원장 출신으로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한 전직 고위 법관들의 사건 수임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퇴임해 개업한 고등법원장 7명과 지방법원장 13명 모두 퇴임일로부터 1년 이내에 최종 근무했던 법원의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전직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은 모두 210건으로 이 가운데 형사사건이 155건으로 73.8%에 달한다. 참여연대는 “판결문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거나 변호사 선임계 제출일이 확인된 사례만 취합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수임사례가 많을 것”이라면서도 “제한적인 조사방식과 범위에 국한된 이번 조사결과만으로도 그 실태의 심각성은 충분히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퇴직 전부터 ‘끼어들기’ 수임 맡기도
가장 많은 사건수임 사례를 맡은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의 경우 퇴직일로부터 1년 이내에 최종 근무법원의 사건수임 사례가 45건으로 퇴직일로부터 6개월 이내가 31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수임한 사례가 7건으로 나타나 전형적인 전관예우의 실태를 보여줬다.
특히 퇴직일로부터 1개월 이내 초단기간 수임사례가 22건이나 됐다. 2007년 3월 김진기 전 대구고법원장은 퇴직한 지 3일 만에 대구고법에서 진행되는 형사사건 항소심의 변호를 맡아 ‘낯뜨거운 사건수임’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고 참여연대 측은 밝혔다.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도 6개월 이내 수임 건수도 조사대상 가운데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퇴직한 지 6일 만에 광주지법 형사사건 변호를 맡았다.
퇴직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이 퇴직 후 수임한 최종 근무법원 사건 중에는 이들이 퇴직하기 전부터 해당 법원에서 다뤄지는 ‘끼어들기’ 사례도 수두룩하다. 참여연대는 “이는 퇴직 법원장들을 통한 전관예우 효과를 의도한 선임이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며 이러한 의도에 퇴직 법원장들이 부응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퇴직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이 최종 근무법원의 사건을 수임한 사례 중에는 유독 형사사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퇴직일로부터 1년 이내 확인된 사례 210건 중에 형사사건이 155건(73.8%)로 가장 많았다. 특히 이광렬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김명길 전 인천지법원장, 안성회 전 서울동부지법원장 등의 경우 조사대상 사례 모두가 형사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관예우는 법조 브로커나 고액 수임료 문제, 사건 처리과정 왜곡과 처리결과에 대란 불신 등의 문제를 양산해 왔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전관예우 논란을 막기 위해 ‘최종 근무법원 형사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개정과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의 적용을 더욱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건수임 제한’ 변호사법 개정 절실
실제로 그동안 ‘전관 변호사 최종 근무법원 형사사건 수임 제한 방식’이 제시됐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2004년 9월과 2007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퇴직 2년 내 최종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이 담당하게 될 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1989년 헌법재판소가 ‘전관 변호사들의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선고한 것을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이 조항은 판검사와 군법무관 변호사 자격이 있는 경찰공무원이 재직 기간 15년 이하일 경우 변호사 개업신고 전 2년 이내의 근무지가 속하는 지발법원이 관할구역 안에서는 퇴직한 날로부터 3년 동안 개업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과 개업은 허용하되 형사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개정안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타당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18대 국회에서도 퇴직 판검사가 퇴직 전 3년의 기간 중 최근 1년 이상 근무한 법원 또는 검찰청의 형사사건을 퇴직한 날로부터 1년 동안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참여연대는 “퇴임 지역 사건 수임은 ‘법조 브로커’나 ‘고액 수임료’ 문제, ‘전관예우’에 대한 의심과 그에 따른 사법 불신 등을 초래한다”며 “국회 계류 중인 전관 변호사의 최종 근무법원 형사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형사사건 전관 변호사와 6개월 이상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법관들로 구성된 재판부에는 가급적 사건을 배당하지 않는다고 예규를 변경했다. 전관의 범위를 더 확대해 말썽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역시 전담 사건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전문 사건은 전담 재판부에 배당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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