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도서관이 있듯이 영화에 시네마테크가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다. 3월1일까지 서울시 종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박찬욱, 오승욱 두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돼서 만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선정
고전영화를 소개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지지하는 박찬욱, 김홍준,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등 영화감독, 정성일, 김영진 등 영화평론가, 문소리, 황정민 등 배우들의 참여로 시작된 이 영화제는 영화애호가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매년 기다리는 대표적인 영화축제가 됐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배우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이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제로, 다른 영화제들과는 기획과정이나 참여방식 자체가 다른 독특한 영화제다.
이번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20여 명의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들이 참여해 저마다의 추천작을 상영한다. ‘친구들’이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자유롭지만, 영화문화의 다양성과 국내에 좀처럼 소개되기 힘든 고전영화들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꼭 보고 새롭게 가치를 평가해야할 영화들을 선정한다는 원칙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악당에 대한 두 감독의 지대한 관심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영화감독을 객원 프로그래머로 초빙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돼 가장 좋아하는 악당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
3년 전부터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감독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배우 중심의 영화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두 감독이 악당 캐릭터들, 특히나 어떠한 원칙과 신념을 지닌 ‘악인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번 영화제를 시작으로 매년 감독들이 직접 ‘객원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 ‘최선의 악인들’이란 건 오승욱 감독이랑 이야기를 해온 내용인데, 원래 목표로 했던 것보다는 소규모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좀 더 준비를 해서 규모가 큰 속편을 해보고 싶다. 최소한 스무 편 정도의 영화를 모아서 상영하고 소책자 같은 것도 만들고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다.”
박 감독은 덧붙여 “오승욱 감독의 취향은 ‘사나이들’, ‘거리의 인생’ 같은 것인데 그러다 보니까 너무 남성적인 영화들, 영미권 위주의 영화들로 구성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며, “유럽 영화들도 포함하고, 여성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길거리 비루한 인생들도 좋지만, 정신병자들과 같은 인물들도 놓칠 수 없겠다 싶어 이번 프로그램에 ‘퍼제션’이라든지, ‘그랜드 뷔페’와 같은 영화들을 포함시키게 됐다”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범죄자, 무뢰한들의 퍼레이드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특별프로그램은 영화 속의 매력적인 ‘나쁜 친구들’을 소개한다. 선한 영웅들과 달리 범죄자, 무뢰한들, 악당들이 어떻게 영화에서 매력적인 ‘나쁜 친구들’인가를 두 감독이 선택한 여섯 편의 영화들을 통해 살펴보는 흥미로운 기회다.
박찬욱의 선택은 ‘밤 그리고 도시’ ‘그랜드 뷔페’ ‘퍼제션’ 3편이다. 1950년작 줄스 다신 감독의 ‘밤 그리고 도시’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인간 본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런던의 거리를 헤매는 야심 많은 사기꾼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1973년작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인 ‘그랜드 뷔페’는 마르코 페레리 감독의 걸작이다. 마르코 페레리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이유도, 목적도 없는 유럽사회의 천박한 소비주의를 끔찍하게 묘사하고 있다. 파리에 사는 중년의 네 남자, 파일럿인 마르첼로, 방송국 종사자 미첼, 주방장 우고 그리고 판사 필립. 그들의 삶은 부유하고 안락해 보이지만, 반복되는 삶에 대한 권태와 남모르는 정신적인 박탈감을 안고 있다. 필립의 외딴 빌라에 모여 그들은 먹고 마시고 섹스만 하는 이상한 게임을 시작한다.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퍼제션’은 1981년작품이다. 안나로 출연한 이자벨 아자니는 파괴적이고 소름끼치는 연기로 그 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이해되지 않는 난해함과 B급 영화적 분위기로 뒤섞은 대단히 컬트적인 영화로 박 감독 작품의 색깔과 맞닿는 지점을 찾는 것도 재미있다.
오승욱 감독 또한 3편의 영화를 선정했다. 조제 조반니가 자신의 탈옥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1960년작 ‘구멍’, 영국의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1971작 ‘겟 카터’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72년 작 ‘들판을 달리는 토끼’가 오 감독의 선정작이다.
‘겟 카터’는 런던 암흑가의 갱단 잭 카터가 동생의 죽음을 조사하는 중 동생의 죽음에 관련된 복잡한 사건을 알게 되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광폭하고 악랄한 카터의 복수는 현재까지도 차용되는 복수극의 전형을 보여준다.
‘들판을 달리는 토끼’ 또한 갱이 등장하는 범죄물이다.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갱단 우두머리의 딸을 납치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뜻밖의 사고가 생겨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예술적인 화면구성과 르네 클레망 감독의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 전개되는 기묘하면서도 세련된 범죄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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