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 등 법조인의 막말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가운데, 법조계의 인권 침해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첫 논란의 불씨는 40대 판사가 70대 원고에게 법정에서 “버릇없다”고 모욕한 발언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원고인 B씨(당시 69세)는 재판 도중 서울중앙지방법원의 A판사(당시 39세)에게 법정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 나오느냐”는 질책을 받았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반말, 명령조 어투 비일비재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논란이 확산되자 A판사는 “진정인이 허락 없이 재판장과 피고대리인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해 법정 예절을 지키라고 주의를 준 것이며, 이는 법정 지휘권의 행사였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인권위 측은 아무리 진정인이 법정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고 피진정인이 재판장으로서 법정 지휘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통념상 40대 판사가 70대 원고에게 “버릇없다”는 표현을 쓴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정에 있던 B씨의 변호인도 “A판사의 말에 너무 불쾌했다. 피진정인은 40대였고 진정인과 참고인은 70대 안팎이었는데 손아래 사람에게 사용하는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판사들의 도를 넘어선 권위주의적 언행은 200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판사 성토’ 사례를 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판사들은 ‘차렷, 열중쉬어’ ‘앉아, 일어서’ ‘90도로 인사 못해요?’ 등 명령어조의 말투나 ‘나가라면 나가’ ‘부도난 사람이 얼굴색 좋다’ 등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다는 진정인들의 증언이 기록돼 있다. 피고인이나 원고는 물론, 심지어 법정 방청객한테도 모멸적인 말을 했다는 진정도 있어 충격을 던졌다.
한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정신질환이 있는 증인의 질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학대 당하고 맞았는지를 다그쳤다. 증인은 재판 후 억울하다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고 방청객들도 재판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판사는 민사소송 피고에게 “90도로 인사 못해요?”라고 말하며 서너 차례 정중히 인사할 것을 강요해 심한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꼈다는 진정인도 있었다. 법정 방청객으로 참석한 한 신청인은 소란을 피우지 않았는데도 한 판사가 “법정에서는 판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며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자신의 이름과 주소, 직업까지 물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사업자금을 제대 조달하지 못해 부도가 난 피고인에게 한 판사는 법정에서 “부도난 사람이 얼굴색이 좋다. 때깔이 좋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판사들의 안하무인적 태도는 노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법정에 출석한 66세 노인에게 한 판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소장을 작성했다. 소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가 “부족한 점을 알려주면 고치겠다”는 말을 하자, “나가, 나가라니까”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일하던 원고는 그 충격으로 사무장을 그만뒀고 원고측 변호사도 현장에서 대응하지 못한 자괴감과 충격으로 해당 사건의 소송 대리인에서 사임했다.
판사들의 이러한 고압적이고 인격모독적인 언행은 사법부의 권위의식과 막강한 권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법정에서 인권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일반인은 재판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해 공식적인 문제 제기도 여의치 않아 그런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판사는 강력한 권력 매커니즘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위의식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며 “군대나 교도사와 같은 특수 조직에서는 ‘반말’을 비롯한 인권 침해가 더욱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검찰 막말 행태 더 심각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조계의 ‘막말’을 막으려면 동영상으로 녹화한 심리과정과 문서 형태의 판결문을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협은 “판사가 사건 관계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부적절한 언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라는 헌법의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막말 사건의 법관 자질 향상이라는 추상적 구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원인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판결결과만 알 수 있을 뿐 판결 이유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법조계의 막말 관행은 법원보다 검찰에서 더 심각하다. 2008년 7월부터 1년간 접수된 검찰관련 인권침해 상담건수는 252건으로 법원에 대한 인권침해 상담건수 18건의 14배에 이른다. 인권상담 사례집에 따르면 한 상담 신청인은 2006년 9월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검사가 “전화통화 할 때부터 삐리 하더니 와서도 건방지게 구네” “이 XX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검사 앞에 훈계하려 들어”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한 신청인은 수사관으로부터 “너 죽을려고 환장했어” “니 성씨들은 머리가 너처럼 둔해” 등의 모욕적인 반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담 신청인은 2007년 5월 검찰 출석 요청을 받고 집에서 나오던 중 검찰 수사관 6~7명이 갑자기 전기총을 쏘고 쇠파이프 등으로 등과 엉덩이, 가슴 부위를 수차례 때렸다고 주장했다. 검찰청에 이송된 뒤 “폭행으로 몸이 아파 죽겠다”고 하자 검찰 수사관은 “뒈져라”고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과거에 비하면 법조계의 강압적인 태도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일부 법조계에선 부적절한 발언과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도 “예전에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비일비재 했던 폭행은 사라졌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반말을 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행태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이명숙 인권이사는 “서울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지방에선 옛날 고을 원님같은 대접을 받았던 판사들의 막말이 더 심하다”고 거들었다.
법조계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자, 검찰 측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검찰청 조은석 대변인은 “검찰과 관련한 인권상담 사례 중 대부분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것이고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며 “요즘엔 조사과정을 CCTV로 찍기 때문에 욕설이나 막말은 거의 없어졌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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