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얼마 전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10년 전쯤 찍어 논 동네 길가 벚꽃 사진을 보다 새삼스런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올해 같은 장소 벚꽃 개화시기가 당시보다 1주 가까이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엔 낮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올라 이동이 잦은 기자로서 고생한 기억도 오버랩 됐다. 지난 4월 29일 기상청은 정부 합동으로 ‘2023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기후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온은 편차가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널뛰는 기온에 꽃잎은 일찍 벌어졌다가 이상 저온에 곧 까맣게 썩어버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벚꽃은 평년보다 2주, 매화는 20일, 진달래는 9일가량 일찍 피었다. 2월부터 4월까지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1.6℃ 높았고, 3~4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4℃ 높았던 것으로 기록됐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천장산 자락에 위치한 홍릉시험림 내 식물 66종의 평균 개화 시기는 50년 전보다 14일, 2017년보다 8일 빨라졌다. 반면 4월 초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는 이상 저온도 잦았다. 당연히 과수 등 농작물 작황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과나 배 값이 ‘금값’으로 치솟은 원인 중 하나가 이상기온 때문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봄철뿐 아니라 11월과 12월에도 극심한 기온 변동이 관측됐다. 일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과 낮았던 날의 기온 차는 11월과 12월 각각 19.8℃, 20.6℃로 모두 1973년 이래 가장 컸다.
기온만이 아니다. 가뭄과 폭우도 극과 극을 오갔다. 광주전남 지역의 경우 이 지역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원인 주암호와 동복호의 저수율은 20% 밑으로 떨어졌고, 댐 건설로 수몰됐던 다리가 3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남 지역에서는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기록됐다. 남부지방의 가뭄은 5월 초 많은 비가 내리고서야 풀렸다. 문제는 이번엔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남부지방의 5월 강수량은 191.3mm로, 5월 평년값(79.3~125.5mm)을 크게 웃돌아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장마철인 7월 중순에는 정체전선이 장기간 머무르며 폭우를 쏟아냈다. 결국 지난해 남부지방의 장마철 누적 강수량은 역대 1위인 712.3mm를 기록했다. 전국 단위로도 지난해 장마철 강수일수는 22.1일로 평년보다 5일 가까이 길었다. 강수량은 660.2mm로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3위였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발생한 인명피해만 53명이었고, 재산피해는 8,000여 억 원에 달했다.
폭염일수는 13.9일로 2022년 보다 3.6일 늘었다. 9월 열대야가 88년 만에 나타나기도 했다. 가을까지 이어진 더위는 바다를 데워 양식 농가에 큰 피해를 줬다. 적정 수온을 크게 넘어서는 28℃ 안팎의 수온이 9월까지 이어진 탓이다. 바닷물 온도가 이상 고온을 보일 때 발령하는 ‘고수온 특보’는 57일간 지속됐고, 특보 해제는 전년도에 비해 2주가량 늦었던 것으로 보고서는 밝혔다. ‘고수온 경보제’가 시행된 2017년 이후 가장 긴 기간 이어진 특보였다. 이 때문에 발생한 피해 규모는 양식 생물 3천6백만여 마리, 피해액은 438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17.5℃로 최근 10년 중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따뜻한 기온이 증발을 더욱 빠르게 만들고, 증발된 수분은 다른 지역에서 폭설이나 폭우 같은 강수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 이상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이상기후 양극화는 기후위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100년에 1번꼴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후 현상에 대비해 설계된 공항, 하수처리장 등의 사회기반시설들도 쉽게 손상될 수 있고, 농작물 생산 차질은 물론 사람들 간의 갈등도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현재 추세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다. 이미 너무 멀리,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때 이른 여름 더위에도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