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고 그 과정 또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 드라마틱한 협상 줄다리기였다. 오랜 마라톤 회의에도 결론을 못 내고 협상시한이 연장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지난 3월29일 이뤄진 양국 정상간 전화통화와 협상시한 48시간 연장이다.
피가 마르고 숨가빴던 순간들을 지나온 과정이었던 만큼 그 결과는 값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주지 않고 받기만 할 순 없는 협상의 법칙에서 이번 협상은 최소한 ‘밑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한미 FTA협상이 타결된 후, 우리 협상단의 협상법과 그에 얽힌 뒷담화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승부수
정부는 처음부터 수비 자세로 나가 골문을 잘 지켰던 것이 이번 협상 결과에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우리 협상단이 기억하는 가장 힘겨웠던 순간은 3월 26일부터 시작된 마지막 고위급 협상이었다. 자동차 등 분야에서 양국의 고위급 협상단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호전되기는커녕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3월 29일 밤 한미 양국이 자동차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협상은 한때 결렬 직전까지 갔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머리뚜껑이 열릴 정도”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수차례의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부분까지 전부 원점으로 되돌린 안을 내놓은 것을 보고 김 대표는 “협상은 끝났다”고 통보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김 현종 통상교섭 본부장은 “협상 시한을 앞두고 결렬 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협상은 양국의 정상 간의 전화통화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당시 카타르 도하를 방문 중이던 노 대통령은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과 20분간 전화 통화를 했고, 양측 대표단에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양국 통상간 ‘빅딜’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날 밤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는 밤늦게 까지 입장차를 정리했다. 피가 마르는 협상 과정에서 결국 48시간 연장이라는 대안까지 마련해 가며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은 오갔다. 협상단은 미 의회가 주말을 보내고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4월2일이 될 수 있음을 사전에 예고하고 ‘버티기’에 나섰던 것이다. 생각은 적중했고 4월1일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협상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힘을 실어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일화로 김 본부장은 협상 직전 만난 노 대통령이 “FTA가 되건 안되건 내가 정치적 책임을 안을 테니 협상팀은 장삿꾼 사고와 논리를 갖고 협상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협상대표단의 힘
각각의 통상교섭관이 들려주는 일화도 당시의 숨막히는 협상과정을 가늠케 한다.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최종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31일 새벽 5시까지 미국이 한국의 양허(개방)안을 발이들이지 않자 “그만 두자. 가서 낮잠이나 자자”고 배짱을 놓았다. 사실 배 국장은 미국 농업 협상단을 이끈 리처드 크라우드(USTR 농업담당 수석협상관) 대사와 장외에서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크라우더 대사는 배 국장을 만나 “이대로는 얻은 게 없어 미국에 도저히 못들어간다”고 했고 배 국장도 “나는 한국에서 살 수없다. 내가 미국에 갈테니 당신이 한국에서 살아라”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크라우더 대사는 배 국장을 ‘닥터 배’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고 한다.
미국은 한미 FTA 통신분과 협상에서 통신사업자의 기술표준을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사실상 이는 미국 기업들이 확보한 기술을 한국에 심으려던 의도가 숨어있다. 이에 맞서 남영숙 외교통상부 FTA 제2교섭관은 “정부가 정당한 기술표준정책 추진권한을 갖고 있음”을 설득시켜 성공적으로 이 협상을 이끌어냈다. 그의 당찬 한마디 덕이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표정과 억양까지 바꿔가며 “내 시체를 밟고 가라(over my dead body)”고 맞받아쳤다. 남 교섭관은 협상 비결에 대해 “적당히 유연성을 보이면서 상대의 더 큰 유연성을 끌어내는 것도 남는 장사”라고 했다.
금유분과장을 맡았던 신제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은 핵심 요구사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미국을 설득하느라 폭탄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신 국장은 양국 협상단 전원을 데리고 한국식 폭탄주를 돌렸다. 신 국장은 “서로 친해지나 정말 원하는 게 뭔지 파악되더라”며 “협상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개방’에 대한 세계적 흐름 ‘찬성’지지로 이끌어세계 최강의 통상대국인 미국과 당당히 맞서 국익을 지켜낸 협상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측에 끌려다니는 퍼주기식 협상이라는 비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 타결이후 지지율이 30%대로 상승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한미 FTA 협상을 마무리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국인 차원에서 높이 평가한다”며 노 대통령을 격찬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례적으로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또한 우리쪽 협상단이 협상을 잘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과반수를 훨씬 웃돌았다.
하지만 한미 FTA 반대를 외치던 국민들의 소리가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단순한 의견은 아닐 것이다. 수출 등 국제사회와 경쟁을 통해 발전해 온 우리 경제구조상 ‘개방’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거부하고는 살아남을리 없다는 절박함이 지지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개방’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국민들이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쪽에선 정부가 협상결과를 지나치게 과대홍보하고 낙관하고 있다며 청문회와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있는 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마무리를 잘 해나가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정부는 한미 FTA에 올인해야 한다”고 이번 협상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