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스타’ 브라운관 장악
복고는 변함없이 문화전반의 화두였지만 재미있는 점은 복고 현상이 점차 가까운 시대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 ‘삼국지’, ‘로봇 찌빠’, ‘비둘기 합창’ 등의 1970년대 만화가 복간돼 사랑 받았고, 음반시장에는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나훈아의 ‘잡초’ 등 아련한 과거의 히트곡들이 담긴 편집음반이 불티나게 팔렸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로 1930년대 패션이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 리메이크 됐고, ‘묻지마 패밀리’ ‘해적 디스코왕 되다’ ‘챔피언’ ‘몽정기’ 등의 복고영화가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1980년대, 특히 1990년대에 대한 추억 여행이 뜨겁다. 그 시절은 경제적으로 최고 호황기기도 했다.

1990년대 주인공이 지금도 주인공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인기스타였던 김남주, 박상원, 전인화 등이 브라운관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으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주인공이고 여전히 멜로의 중심에 서서 변함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가요계는 보다 직설적으로 과거를 찬양한다. ‘룰라’, ‘클론’, ‘부활’ 김건모 등 1990년대 인기 가수들의 히트곡이 끝없이 리메이크되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장르적으로 가장 풍성하고 감성적으로 빛났고 최고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했던 1990년대를 전성기로 여기고 있다. 최근 컴백한 가수 손담비와 유채영은 대놓고 1980년대를 재현하고 있다. 손담비는 과도한 ‘어깨 뽕’과 펑키한 헤어스타일, 원색적 의상과 촌스러운 디스코를 앞세워 과감한 복고풍 무대를 선보였다. 1980년대 댄스곡을 옮겨놓은 듯한 리듬 또한 향수에 젖게 한다. 유채영의 신곡 ‘좋아’ 또한 복고 댄스와 함께 1080년대 풍의 비트를 살린 댄스곡으로 신선한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두 곡 은 모두 토요일을 주제로 한 가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또한 주 6일 체제에서 음악에 몸을 실어 신나게 춤추고 노는 날이었던 토요일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이런 1990년대 추억여행은 영화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페스티벌’을 통해 1990년대 인기 배우였던 장국영을 회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최측은 1990년대 크게 히트했던 장국영의 영화 ‘야반가성’, ‘해피투게더’, ‘가유희사’, ‘백발마녀전’ 등 추억의 홍콩 영화를 10년 전 극장 입장료인 5,000원에 만나보는 기획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화제 주최인 ㈜모인그룹 측은 “청소년 시기에 장국영과 홍콩영화를 사랑했던 현재 30, 40대 들의 관람 문의가 줄을 잇는다”고 전했다.
엑스세대는 여전히 문화 소비주체
그렇다면 왜 1980~90년대인가. 20년 단위로 트렌드가 순환하는 문화에 익숙한 미국은 1970년대 중반에 19050년대, 1980년대에는 1960년대의 스타일이 유행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대중문화는 그 과실을 먹고 자란 향유자들이 성장해 추억을 다시 대중문화 상품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20년을 단위로 순환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1990년대의 문화 소비 주체들인 당시 10대들이 여전히 대중문화 향유 주체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88만원 세대라는 힘든 현실을 짊어지고 있는 현재의 20대들이나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10대들은 선배 세대와는 달리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유도 경제력도 없다. IMF 이전, 발전과 호황을 누리던 풍요로움의 상징인 1990년대를 그리는 문화 트렌드는 어려운 현시대에 대한 반대급부이자 엑스세대, 오렌지 세대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30, 40대가 문화전반에 다시 중요한 소비 주체로 등장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10대들 중심으로 형성된 ‘그들만의 문화’에서 소외됐지만 여전히 구매력이 충분한 최초의 엑스 세대들을 위한 ‘추억여행’ 트렌드는 문화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