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주년이다. 힘든 터널을 어렵게 지나왔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했던가. 세계를 깜짝 놀랄게 할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한참 뒤에 있던 중국과 인도 등의 성장세에 눌려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가 돼 버렸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국자본에 상당히 의존해 왔다. 외화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당시로선 외국자본이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 ‘고마운’ 자본이었던 것이다.
국내자본과 다른 점은 ‘이동성’ 높다는 것 뿐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바뀌었다. 소버린의 SK 경영권 공격, 칼 아이칸의 KT&G 인수 위협,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논란 이후 ‘구세주’와 같던 외국계 자본은 ‘나쁜 자본’으로 변해 버렸다. 주가상승을 유발한 후 차익을 먹고 튀는 ‘먹튀’ 이미지가 강하게 뿌리 박혔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그러나 혹자는 지금이 ‘제2의 외환위기’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자본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은 ‘외국자본과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외국자본은 숱한 논란 속에서도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외국자본의 유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현황과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 의식, 그리고 실제 외국자본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봤다.
외국자본은 수익을 극대화하고 회수를 전제로 투자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국내자본과 차이가 없다. 단지 자본 소유자의 국적이 ‘외국’이고 국내자본과 비교해서 국내를 쉽게 떠날 수 있다는 ‘이동성’이 높다는 점이 다르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소버린이나 론스타 사례와 달리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외국자본도 있다.
R&D를 기반으로 성공한 볼보건설기계코리아와 외환위기 때 정리 해고된 직원이 복직된 GM대우 등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맥쿼리는 2000년 한국법인을 설립한 이후 한국인 채용을 늘려왔고 피델리티는 외국 투자자들을 위한 한국 펀드를 만들었다. 또한 영국계 슈로더 운용은 한국법인 직원 중 외국인은 단 한명도 없다. ‘한국 슈로더는 한국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외국자본의 ‘나쁜’ 역할은 해당자본의 속성이 단기 차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지 ‘외국자본’이기에 생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것을 “일부 단기 투자의 역할을 통해 ‘전체’로 확대하는 ‘일반화의 오류’”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기존의 실증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성과가 국내기업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외국자본은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시켰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국내기업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며 국부가 유출되고 국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다는 우려도 ‘기우’에 불과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실제로 외국자본의 부정적 사례로 언급되는 2003년 소버린의 SK경영권 위협 사건 이후 SK는 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의 개선을 선언했고 이후 국내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두고 본다면 외국자본이 국내 경제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최근 들어 외국자본은 ‘나쁜’ 자본이라는 정서가 존재하게 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외국자본의 경제적 효과를 다수의 국민들이 나누어서 향유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서 외국자본의 효익을 주장할 수 있는 경제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반면 외국자본이 유입된 기업의 소유 경영자는 경영권 위협을 느끼게 되고 노동자들은 사회 안전망이 미비돼 있는 현실에서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막강한 규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게임규칙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특정 이해관계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게 되고 이것이 확산되면서 국민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반 국민들이 경제 전문가들보다 외국인 투자의 영향을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 78.1%와 일반국민 64.9%는 국내에 유입된 외국자본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외국자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데는 기업경영권 위협, 국부유출, 고배당 요구에 따른 투자위축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성장동력 찾기 위해선 외국자본 활성화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실적은 세계평균이나 경쟁국들 수준과 비교해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 들어 더욱 부진한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자본 대비 외국인 투자비율은 2006년 기준 1.92%로 세계평균(12.6%), 동아시아 평균(10.1%), 중국(8.0%), 대만(10.3%), 홍콩(103.9%), 싱가포르(79.5%)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04년 4.47%를 기점으로 2005년 3.04%, 2006년 1.9%로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0년 이후 점차 감소했다. 기업구조 조정과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국내 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국내 투자자의 지분을 인수하는 M&A 투자, 공장이나 사업장을 설립하는 그린필드형 투자로 구분된다. 크게 보면 M&A형 투자는 339억 달러, 그린필드형 투자는 699억 달러로 그린필드형 투자가 두 배 정도 높다.
그러나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M&A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이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세계적으로 M&A형 투자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2004년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과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M&A형 투자의 감소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곧, 국내 M&A시장 규모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길로 해석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큰 변화중의 하나는 투자 주도국이 미.일 중심에서 미.EU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EU가 전체 투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투자금액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이런 데는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나라를 전략적 거점기지로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원은 “최근 들어 한.EU FTA 협상에서 EU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이며, 외국자본 유치 측면에서 본다면 한.EU FTA 체결은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투자 대상국가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AT Kearney가 조사한 FDI신뢰도 지수에서 한국은 2003년 조사에서는 18위였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현재는 24위에 머물렀다. 중국 1위, 인도 2위, 말레이시아 16위와 비교하면 주변국에 비해 한참 낮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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