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부자=빌 게이츠’ 라는 공식이 상식처럼 돼 왔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1994년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른 뒤 13년째 1위 자리를 뺐겨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이변이 생겼다. 빌 게이츠가 신흥갑부인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에 ‘세계 최고 갑부’의 자리를 내준 것. 포천지에 따르면 슬림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총액은 7월말 현재 590억 달러로 빌 게이츠가 보유한 주식 580억 달러보다 많아 ‘세계 최고 갑부’자리에 등극했다. 외신들은 빌 게이츠를 제친 슬림을 일제히 조명했고, 그의 성공비결에 주목했다.
독점사업가 ‘록펠러’와 유사한 성공패턴
레바논계 이민자 출신인 카를로스 슬림(67세)은 멕시코의 통신 재벌이다. 통신회사 모빌을 필두로 담배, 건설, 광산, 자전거, 음료, 항공, 철도, 은행, 언론 등 멕시코의 200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는 멕시코 전체 기업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주식규모이며, 멕시코 총경제생산의 8%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성공비결은 ‘독점과 합병’에 있다. 기업을 싸게 사들인 후 공을 들이고 하청회사들을 차례로 독점하며 경쟁사의 숨통을 졸라 매 회사를 팔도록 유도한다. 이런 면에서 슬림은 한때 미국 최대의 독점사업가였던 록펠러와 비교되기도 한다. 록펠러는 산업화 시기에 정유사업 독점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 과정에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비난도 받았으나 말년에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재단에 기증함으로써 대표적인 자선사업가로 호평 받았다. 슬림도 ‘독점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고는 있지만 록펠러를 따라가진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록펠러가 미국 경제의 2.5%를 차지하며 독점사업을 이끌었던 데 비해 슬림은 멕시코 경제의 7.5%를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비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멕시코에서는 “이 식당은 카를로스 슬림이 소유하지 않은 유일한 식당입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나올 정도다.
멕시코는 UN통계에서 부의 평등순위가 126개국 중 103위를 차지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이다. 이 나라 국민들의 5분의 1이 지난 2년간 하루 2만 달러 미만을 버는 동안 슬림은 무려 2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맨해튼의 멕시코 투자가인 데이빗 마르티네스는 “슬림이 록펠로와 카네기, J.P 모건을 합친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사업가적 기질 발휘
외신 등에 따르면 1940년 레바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슬림은 어릴 적 가족과 친지 모임이 열리면 사탕과 담배를 팔아 돈을 벌고 열두 살 때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을 정도로 사업가 기질을 보였다고 한다. 상업으로 성공한 부친에게서 수백만 달러의 유산을 넘겨받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 대학 졸업 당시 친구들과 함께 주식 브로커 일을 시작으로 60~70년대 음료회사와 출판사 인수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후 1981년 멕시코 제2의 담배회사를 인수하면서 사업적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석유값이 폭락했을 때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오늘날의 부를 축적하는 결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특히, 사업가가 되기 전 멕시코 최대의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을 정도로 셈에 아주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슬림은 특히 최근 2~3년간 매우 빠른 속도로 부를 쌓아왔다. 2004년 그의 재산은 139억 달러로 세계 갑부 서열 17위였다. 당시 1위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은 466억 달러로 3분의 1수준이었던 것. 그러던 것이 2005년 238억 달러로 세계 부호 4위에 랭크됐고, 2006년 300억 달러로 빌 게이츠와 버핏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
숨가쁜 성장은 올 상반기 결정타를 날렸다. 슬림이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최대 이동통신회사 아메리칸 모빌의 주가 폭등으로 빌 게이츠의 재산을 앞선 것. 이 회사는 2000년 이후 가입자가 매년 40%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 추세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은 멕시코 최대 유선 통신사 텔멕스다. 1990년 국영업체 텔멕스의 매각에 참여해 18억 달러에 51%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대표가 됐고 텔멕스의 주가 상승으로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텔멕스는 현재 90%이상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며 매년 60억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고 있다. 전화회사와 통신회사를 움켜 쥔 슬림에게 ‘통신 재벌’이란 별칭이 붙여진 것도 이때부터다.
독점가인가, 유능한 기업합병가인가
하지만 슬림의 사업적 욕심은 멈추지 않았다.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건설과 석유, 전기, 자동차에 진출했다. 금융과 항공, 언론 등 ‘문어발’식 사업을 확장했다. 슬림이 보유한 기업들만 합해도 멕시코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가족까지 재산을 포함하면 멕시코 국내총생산의 8%나 된다. 2000년 심장수술 후 가족들에게 경영권을 상당부분 이양하는 등 가족경영과 부의 세습에 힘쓰고 있다. 또 라틴아메리카의 억만장자들이 참여하는 ‘아버지와 아들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가족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
그의 막강한 부는 정부도 독점적 사업을 막지 못한다. 의회의 반독점적 입법을 무산시키고 언론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대통령도 기업독점을 개선시키기 위해 설득해 보았지만 그의 엄청난 독식력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에 분노하는 멕시코 관리들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단지 “그가 죽고 나서 자녀들이 경영권을 잡으면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벼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슬림의 회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론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추켜세우는 쪽도 적지 않다.
한편 세계 최고의 갑부 반열에 올랐지만 검소한 생활로 더욱 유명하다. 부호들의 상징인 호화 요트는 물론 별장 한 채 없다. 수 십 년간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으며 유리창도 없는 지하 사무실을 쓴다. 에어콘은 종종 고장 나 있을 때가 많고 값싼 ‘코히바’ 시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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