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누르고 2기 집권을 확정했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로 미국뿐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격동의 ‘일진광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특히, 한국경제가 적지 않은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당선, 국내 영향 주시
이번 트럼프 승리 연설에 대외적으로 미국 우선주의, 대내적으로 경제 부흥을 아우른다는 트럼프 대표 정치 슬로건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등장했다. 이 슬로건은 트럼프 집권 2기 핵심 기조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한 국가가 있다. 도움이 매우 절실한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다”며 “우리는 국경을 고칠 것이고,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고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주의 및 고립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각종 대외 정책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바이든 정부 때보다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이후 기존 노선을 고수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들과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 그는 과거 유럽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로 나토와 갈등을 겪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올해 초 대선 유세에서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이들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발언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시절 유럽의 저조한 방위비를 문제 삼으며 탈퇴를 공언한 바 있다.
한국에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한국이 오는 2026년 이후 지불할 액수의 9배에 가까운 액수이다.
트럼프 2기 집권이 되면 외교·안보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시작해 각종 대외 정책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트럼프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휴전안을 추진할 수도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데 대해 유럽 전체 지원을 합친 금액과 동일한 규모라고 지적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유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을 증명하는 사례로 자주 공격해 왔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와 마찰을 빚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취임 첫날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핵 버튼’, ‘로켓맨’ 등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키웠다. 그러나 이후 김 위원장과의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안보 환경을 뒤흔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임 중에도 종종 주한미군 관련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외 무역에 있어서도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 확대 차원에서 감세에 나서는 동시에 관세 인상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산업연구원(KIET)은 ‘트럼프 재선 시 통상정책 변화와 우리의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리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과거 집권 1기 동안 벌어졌던 한미 간 통상 현안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1일 국내 기업 3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대선 관련 정책이슈와 우리 기업의 과제 조사’ 결과 우리 기업들은 당시 두 후보가 제시한 경제정책 공약 중 ‘관세 공약’에 가장 관심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관세를, 중국산 제품에는 60%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 대담 행사에선 최대 1,000% 관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의 공약 중 ‘보편·상호적 관세 확대’(25.6%) 정책과 ‘미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통상전략 추진’(18.5%) 정책을 주목했다.
반도체·배터리·완성차, 불확실성 커져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폐기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이 경우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텍사스주)와 SK하이닉스(인디애나주)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 같은 지원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도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 주도 국제 반도체 분업구조 변화 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출통제 수준이나 범위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리 기업의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도체 지원법’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2기에 들어서면 현재 바이든 정부가 시행 중인 ‘반도체 지원법’이 폐기될 공산이 크다. 그는 최근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 인터뷰에서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정면 비판한 바가 있다.
지난 7월 트럼프는 “대만이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우회적으로 반도체 지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데 이어 지원법 폐기 의사까지 직접적으로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각각 64억 달러(9조 원), SK하이닉스는 4억 5,000만 달러(6,200억 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까지 힘들어질 수가 있다. 현재 원자재비 및 인건비가 급등해 비용 부담이 크게 올라 보조금 등 지원이 없으면 미국 공장 건립 비용은 부담이 더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한국 반도체 업계가 받을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아직 경제 정책이 명확히 나오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해 세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산업도 격랑이 예상되는 분야이다. 탈중국화로 미국 시장 진입 자체에 제동이 걸리고 미국 내 생산경쟁력 향상으로 수입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세, 비관세장벽에 기반한 보호무역 심화와 철강 수요구조 변화와 함께 철강 원료 공급망 재편의 압력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심각하다는 전망이다.
화학 분야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조달 안정성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뉴딜 즉시 철폐와 대중국 최혜국대우 철폐 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시행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화학제품 공급망 내 조달 안전성은 소폭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사업다각화 관련 투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약가 인하, 자국 내 필수의약품 생산, 공적부조·사회보험 개혁 등을 언급했지만 바이든 정부의 헬스케어 정책은 축소하거나 극단적으로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트럼프 역시 제네릭·시밀러 사용 촉진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으로 한국 바이오시밀러 수요는 최소한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관련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기차와 태양광 등에 세액공제를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부정적이다. 친환경 정책인 바이든 행정부의 IRA 폐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요 에너지 정책을 보면 석유 시추가 가능한 연방 토지와 규모를 늘려 미국산 석유를 더 많이 생산하는 방안이 담겼다.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관세 관련 트럼프는 미국 외 생산 차량에 대해 최대 100% 관세 등 과세 부담 확대를 선언했다. 우리 기업의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국내외 전기차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배터리 산업에서는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는 IRA 생산 세액공제와 구매보조금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있다. 실제 폐지 여부는 연방 상하원 총선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기조가 명확한 만큼 부정적 여파가 있을 것이란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지난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선 결과가 첨단제조세액공제(AMPC)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AMPC는 미국에서 첨단 기술로 배터리 등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면 기업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제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애리조나 등에 짓거나, 현재 건립 중인 단독·합작 공장은 8개다. SK온은 조지아, 테네시, 켄터키 등에 합작 법인을 포함한 공장을 운영한다. 삼성SDI는 올 4분기 공장 가동으로 AMPC 수혜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결과에 AMPC의 향배가 주목된다. 트럼프는 IRA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 대신 화석연료 생산 증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AMPC가 유지될 수 있지만, 축소나 변경 같은 후속 조치가 나올 수 있어 한국 배터리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中 견제로 대미 수출 감소 시 韓 부정 영향
트럼프 당선인이 강력한 관세 정책을 내세우면서, 한국 완성차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며, 관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충분한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어 관세 압박을 최소화할 것이란 분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최대한 활용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펼 것이란 예상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연산 36만 대), 기아 조지아 공장(연산 34만 대)에 더해 조지아주에 구축한 연산 30만 대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도 가동한 상태다. 이들 거점을 활용한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폭탄을 피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 강화가 한국경제에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을 운영 중인 가운데 최근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로 지정되면서 공장에 미국산 장비 반입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 문제는 트럼프 2기의 대중 정책으로 인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대중 제재 강화 차원에서 VEU 지정을 취소할 공산이 크다. 더욱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도 높은 만큼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우선을 경제적으로 실현하는 수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세”라며 “중국의 대미수출이 줄면 우리나라도 대중국 수출이 줄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